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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4-01-14
출판사 너머북스
저자 오항녕
판형 152x225_신국판/A5변형판

너머북스.jpg

 

오항녕 교수의 역사시평, 타락하는 역사가 버겁다

“역사에 대한 궁금증은 현재 우리의 삶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이제 우리 사회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활로를 담아내는데 역사가 말할 때”

 

『조선의 힘』『광해군, 그 위험한 거울』『기록한다는 것』등을 펴내며, 기억과 기록, 제도와 인간, 국가와 공동체라는 주제를 조선시대 문명 속에서 연구하고 있는 오항녕(전주대) 교수가 신간 『밀양 인디언, 역사가 말할 때』를 통해 최근 한국 사회의 타락하는 역사가 버겁다고 말한다. 일련의 국사교육 강화라는 쇼의 배경 한편에는 최소한도의 사실(史實) 기술조차도 ‘대한민국 건국의 정통성을 훼손하는 좌파적 역사인식’이라고 매도하는 ‘정치역사학’이 개입되어 있다고 한다.

 

오항녕 교수는 한국의 역사학 위기는 예견되어 있었다고 한다. “현재의 삶이 지고(至高)의 것으로 받아들여질 때, 누가 지난 경험을 진지하게 현실로 끌어오겠는가?” 라며 과거는 현재나 미래보다 항상 열등하다는 역사관에서는 과거 또는 경험이 기껏해야 호고의 취미일 뿐이라 비판하며, 역사에 대한 궁금증은 현재 우리의 삶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한다고 강조한다.

 

『밀양 인디언, 역사가 말할 때』는 역사를 통하여 시사를 보고, 시사를 통하여 다시 역사를 읽는 책이다. 4대강 사업, 정상회담 회의록, 국정원과 군의 대선개입 의혹, 교학사 역사교과서, 밀양 송전탑 등 여러 정치, 경제, 사회적 시사(時事)를 역사적 안목으로 풀어낸 저자는 역사가 “남의 말을 묵묵히 따르고 믿기보다, 정말 그런지 자료를 확인하고, 왜 그런지 생각해야 한다”며 그렇게 얻는 사유의 힘은 “현실을 돌파할 수 있는 동력이 될 것이고, 새로 얻은 판단은 장차 우리 삶의 좌표가 될 것”이고 “우리 사회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활로를 담아내는데 역사가 말할 때”라며 이 책의 의미를 짚는다.

 

“그래서 사론(史論)을 썼다. 내가 어떤 세상에서 뭐 하고 사는 건지 묻고 대답한 이야기이다. 역사가 우리 현실에 대해 해줄 얘기가 있고, 우리 삶이 나아지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역사학도가 같은 시대를 사는 분들에게 내보이는 속내이다. 나와 서로 생각이 비슷할 수도 있지만, 다른 데도 있을 것이다. 어느 경우든 역사공부는, 또 대화는 거기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같다.”

 

 

역사를 통해 시사를 보고 시사를 통해 역사를 읽는다

“터럭만큼의 차이가 천 리의 차이를 가져온다. 그 틈을 구별하는 눈을 갖는 것도 이 땅에 사는 시민의 자격”

 

“나이 들고 집 없는 사람이 노숙을 하다가 죽었다는 것이 뉴스가 되지 않는 반면, 주가지수가 2포인트 떨어졌다는 것이 뉴스가 된다. 어떻게 이럴 수 있나?”

 

2013년 11월 24일 로마 교황청 홈페이지에 실린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문 중 일부이다. 그는 거꾸로 된 뉴스를 통해 뒤집힌 우리의 삶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물었다. 지금 살아 있는 시대에 대한 비판은 역사학자의 숙명일까. 저자가 던지는 질문과 비판은 다음 말과 압축된다. “도대체 나는 어떤 세상에서, 뭐 하고 사는 걸까?”

 

이 책의 제목처럼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어른들의 싸움을 저자는 과거 인디언의 저항으로 비유하며, 밀양이라는 지역과 지금이라는 시기를 떠나 훨씬 근원적인 질문이라 여기며 삶의 터전을 빼앗는 방식으로 전개된 근대 문명에 대한 대안을 요구한다고 본다.

 

“밀양은 인디언이다. 역사의 승패를 거론하고 싶지 않지만, 밀양 인디언들이 이길 듯하다. 또 이겨야 한다. 한국전력이 이기면 일부만 잠깐 살고 결국 모두 패배할 것이지만, 밀양 인디언들이 이기면 다 같이 살고 그렇기에 모두 이길 것이기 때문이다.” - 24쪽

 

또 4대강 사업이 운하냐 아니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공사를 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사업이었다. 이제 거꾸로 그와 정부가 죽인 4대강을 살리는 데 혈세가 들어가게 생겼다. 나랏돈이 얼마나 허투루 쓰일 수 있는지 보여준 국민교육의 모범이었다는 것이다. 민생을 제쳐두고 나랏돈을 궁궐 공사에 탕진한 광해군을 조선시대 사람들이 왜 혼군(昏君), 정신 나간 임금이라고 불렀는지 이해가 된다. 오항녕 교수는 아방궁 축성과 원정으로 백성을 동원한 진시황과 육가(陸賈)의 건의로 말에서 내려와 경연(經筵)을 열며 문치(文治)을 정착시킨 한고조 유방의 거리는 원래 그리 멀지 않았다고 말한다. 호리지차 천리지별, 터럭만큼의 차이가 천 리의 차이를 가져온다. 그 틈을 구별하는 눈을 갖는 것도 이 땅에 사는 시민의 자격이라 말한다.

 

독자들께서는 기억하시리라. 2008년 8월 어느날, 미국의 부시가 당시 초미의 관심사였던 아프가니스탄 파병문제로 방한하여 정상회담을 한 뒤 공식 기자회견 자리에서 파병문제에 관해 논의를 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아프가니스탄 뭐, 파견문제, 이것은 부시 대통령이 답변해야 하잖아요. 내가 할 것이 아니고, 그러나 그런 논의는 없었다는 걸 우선 말씀드립니다. 네 허허.”

이때 부시가 이명박을 쳐다보며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으며 이어폰을 빼고 즉각 반반하며

“우리는 논의했습니다. We discussed it!”

“아 말했구나!”

 

아무렇지 않게 실실 웃으며 책임감 결여에 대한 자각을 피해갈 수 독특한 인성구조. 저자는 여기서 많은 것을 접었다고 술회한다. 자존심이 결여된 사람이 책임감을 갖기는 어렵고, 책임감이 결여된 사람이 정의롭기는 더더욱 어렵기 때문에. 천(千)가지 오류를 가진 교학사 역사교과서를 채택한 고등학교가 하나 남았다는 뉴스에 대해 저자는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자존심과 격조라 했다.

 

최근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로 나타난 젊은이들의 분노와 걱정에 대해 우리는 좌파와 우파, 보수와 진보로 나누어 답할 수 있을까? 오항녕 교수는 이인폐언(以人廢言), 즉 “네가 하는 말이니까 믿을 수 없다”라는 말이 나오면 끝이라 일갈한다. 그 전에 치유해야 한다. 근대가 만들어 낸 보수/진보라는 허술하기 짝이 없는 개념으로 현실을 재단하기보다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이 살면서 축적한 공통의 느낌, 상식, 지혜를 신뢰하며 현재를 직시하길 권한다. 이럴 때 진정 역사가 거울이 되고, 과거와 현재가 대화를 하게 되며, 모든 역사가 현대사가 된다. 이것이 저자가 역사를 통해서 시사를 보고, 시사를 통하여 다시 역사를 읽지 않을 수 없었던 까닭이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광경에서부터 나라 걱정, 인류 걱정까지 펼쳐 있는 이 책에서 저자의 메시지는 ‘공부’이다. 자존심과 격조는 꾸준한 공부와 사색을 통해서만 유지된다. 인간의 크기는 답을 잘 내는 것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안고 가는 힘으로 결정된다. 스님들의 화두처럼. 화두를 안고 가는 힘, 인생에서 던져야 할 질문을 안고 가는 힘을 키우자는 것이다.

 

 

‘도로의 역사’에서 ‘마당의 역사’로의 제언

 

이 책에서 저자는 ‘도로의 역사’를 지양하고 ‘마당의 역사’를 상상해보자고 제안한다. 오항녕 교수는 ‘근대를 향하여’ 진행되었다고 생각하는 역사학을 ‘도로의 역사’라고 부른다. 부산행 열차를 탄 승객에게 수원, 대전, 대구는 거쳐야 할 정거장의 하나에 불과하다. 그러나 대구, 대전은 정거장이기 이전에 그곳 사람들의 삶의 마당이다. 마찬가지로 고려나 조선시대는 그때 사람들의 삶의 마당이다. 과거를 근대로 오기 위해 거쳐야 할 정거장 정도로 인식하는 근대 역사학은 역사를 부정한다.

도로의 역사는 과거만 지우지 않는다. 불투명한 미래를 채색함으로써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을 지워버리거나 호도한다는 점이다. ‘도로의 역사’가 경제적으로 표상되면 소득 1천 불, 1만 불, 2만 불로 나타난다. 4만 불을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4만 불이 되면? 행복할까? 자꾸 어디로 가려고 하지 말고, 지금 이 자리, 이 마당을 바꾸어보자고 한다. 원래 이것이 역사 발전의 본모습에 가깝다는 것이다.

 

“평소 알고 있는 마당이라는 이미지 그대로 머릿속에 그려보자. 어릴 때 뛰어 놀던 마당도 좋고, 콘서트나 연국이 열리는 무대도 좋다. 촛불집회가 열리는 서울광장도 마당이고 21세기 한국 사회도 마당이다. 지금 여기에 삶이 펼쳐지고 있는 시공간으로서 마당을 상상하고, 여기를 살 만한 곳으로 만들어보자는 역사학적 제안이자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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