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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4-03-17
출판사 너머북스
저자 미야지마 히로시
역자 노영구
판형 기타

 

너머북스.jpg

 

한국인에게 양반은 무엇인가?

 

우리가 몰랐던 양반의 실체를 찾은 미야지마 히로시 교수,

 

“한국의 유교적 전통은 중국을 존숭하는 민족성이 아닌 역사적 형성물이다”

 

십수년 전 도쿄대에서 성균관대로 옮겨와 화제가 되었고, 작년에 40년 한국사 공부를 한글로 써서 집대성한 『미야지마 히로시, 나의 한국사 공부』를 펴낸 바 있는 미야지마 히로시 교수(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도쿄대 명예교수)가 최근 정년퇴임을 기념하여 그의 주저인 『미야지마 히로시의 양반』을 다시 출간하였다. 조선시대를 이해하는 데 ‘양반’이 키워드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지만 오늘에도 여전히 강력하게 남아 있는 유교적 전통과 맞닿은 맥락이 무엇인지와 연관해서 미야지마 히로시 교수만큼 정리된 이해를 갖고 있는 분이 얼마나 있을까.

『미야지마 히로시의 양반』은 15, 16세기 재지양반층의 광범위한 형성을 1단계로 하고 18, 19세기 양반적인 가치관, 생활 이념이 향리나 서얼 등의 중간층은 물론이고 농민들에게까지 침투한 양반 지향 사회의 성립을 2단계로 하여 사회 구석구석까지 유교적 생활 관습이 정착하는 모습을 펼쳐낸다. 저자는 부분을 감싸 안은 거시적인 안목으로 그동안 한국 역사학계의 여러 연구 성과들을 적절하게 종합하면서 한국의 전통 사회를 하나의 뚜렷한 흐름 속에 담아냈다. ‘양반’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도 저자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가 되게끔 이 책의 기술(記述)은 요령 있고 체계적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한국 사회의 유교적 전통이 사회 전체로 보급된 것은 18세기 이후의 일이며, 그것은 한국인의 긴 역사에서 본다면 그렇게 오래지 않은 산물이라 한다. “전통이 오랜 시대부터 존속해왔다고 생각하는 것이 틀렸다면 전통과 근대를 대립해 생각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한국에서도 전통적인 것은 19세기 후반인 근대에 들어와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강화되는 면도 보입니다.”라며 특히 18세기 이후 양반층의 지방지배에 도전하려고 새로이 성장해온 계층도 그 목적은 양반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양반으로 성장하는 것이었다고 피력한다. 이 결론은 전통을 하나의 역사적 형성물로 객관적으로 짚어낸 다음 다다른 생각이라는 점에서 전통과 근대의 관계에 대한 깊은 성찰로 우리를 이끌어준다.

미야지마 교수는 양반의 역사적 실체를 정밀하고 풍성하게 복원해낸 이 책에 이어, 조선시대 양반의 ‘정신세계’에 대해 고찰한 책을 집필할 것이라 한다.

 

 

1. 우리가 몰랐던 양반의 역사적 실체를 찾아서

 

추석 때 차례와 성묘를 위해 귀성하는 한국인 친구를 따라 경북 안동에 들렀던 개인적 체험으로부터 저자는 이야기를 풀어간다. 왜 같은 동아시아 유교 문화권이면서도 일본과 베트남과 달리 한국은 오늘날에도 유교적 전통을 일상생활 곳곳에 깊숙이 간직하고 있는 것일까. 그런데 통념과는 달리 일상생활을 지배하는 유교적인 예가 일반 민중에까지 침투해 들어간 것은 조선시대 후기인 18, 19세기 이후의 일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다면 통치이념으로서의 주자학 수용과 생활규범으로의 전면적 수용 사이의 긴 시간적 거리를 메우며 주자학의 이념을 조금씩 일상생활 속으로 운반해 들어간 주체는 누구이며 그 주체는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미야지마 교수는 양반 계층, 특히 재지양반층의 형성 과정을 밝힘으로써 이 질문에 답한다.

그런데 왜 재지양반일까? 서울양반〔京班〕은 비교적 가계의 근본이 분명했고 누가 봐도 양반이었지만 사회 전체로 본다면 한 줌의 특권집단에 지나지 않았다. 이에 비해 재지양반은 전국적으로 넓게 분포하였고 한국 전통 사회의 특징을 고찰하는데 중요하다는 것이다. 오늘날까지 살아 있는 유교적 전통과 친족, 가족제도의 존재 방식 등도 재지양반층의 형성과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2. 재지양반은 어떤 존재였으며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미야지마 교수는 안동 권씨 권벌 가문을 모델로 하고 해남 윤씨 윤선도 가문과 그 밖의 일족을 곁들여 우리에게 재지양반의 전형적이고도 구체적인 이미지(像)를 보여준다. 권벌 일족이 당시 안동에서 양반으로 인정받았던 것은 단순히 저명한 관료와 학자를 조상으로 두었을 뿐 아니라 여러 대에 걸친 집단적 세거지가 있었고, 양반의 생활양식 즉 조상제사와 손님접대를 정중히 하고, 학문을 통한 자기 수양에 진력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대대의 결혼 상대도 앞의 요건을 충족시키는 집단에서 고르는 가운데 양반이라는 확고한 지위를 구축한 것이다.

이것은 이 책에서 소개하는 안동 권씨 권의, 권벌 형제 일족이나 천전 김씨 김성일 일족의 가계에서 우연히 일어난 현상이 아니었다. 사회 계층으로서의 양반층은 15~17세기에 걸쳐 전국적으로 형성되었는데, 이는 하나의 광범위한 사회 운동으로 볼 수 있는 현상이었다. 재지양반 계층의 출신 모체는 고려시대 토착 이족(吏族) 세력으로 이족→중앙관료→세거지 정착이라는 코스를 밟아왔다. 즉 재지양반 계층의 형성 과정은 이족 세력에서 재지양반층으로 분화해온 과정이었고, 이 분화의 분기점으로 한번은 중앙정부의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이 필요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15~17세기에 재지양반층이 일제히 형성된 원인은 어디에 있었는가?

저자는 재지양반층의 형성을 당시 농업 생산력의 발전과 연결하여 설명한다. 조선 전기는 농업 생산력이 눈부시게 발전한 시기였다. 이 시기의 농업 발전은 재지양반층 형성의 큰 원동력이 되었으며 재지양반층은 농업 기술의 발전과 산간 및 해안 지역의 농지 개발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였다. 저자는 이 시기에 만들어진 권벌 가문의 분재기와 지방지, 대동여지도 등 다양한 고문서를 통하여 실증적으로 보여준다.『농사직설』『금양잡록』『농가월령』등 독자적인 농서의 출현도 이를 확인시켜준다. 저자의 이러한 분석은 양반을 지주라고 이해해왔던 통념을 뒤엎는다. 즉 양반은 자기의 소유기를 소작인에게 임대하고 그 지대를 얻었을 뿐 생산 활동에서는 완전히 유리된 기생적인 존재가 아니라 16세기의 재지양반층은 노비를 지휘 감독하며 직영지를 경영하는 농업 경영자였던 것이다.

 

 

3. 당시 양반들의 일상생활은 어떠하였을까?

 

저자는 현재 권벌 종가가 소장하고 있는 9종류의 분재기와 족보 및 오희문의 『쇄미록』과 유희춘의 『미암일기』등 양반가의 일기를 를 통해 독자들에게 당시 양반 사회에 대한 실제적 감각을 느껴볼 수 있게 한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16세기 일상의 풍경 중 일부를 보자.

먼저 봉제사(奉祭祀)의 비중이다. 오희문은 1598년 일년간 스물여덟 번의 제사를 지냈다. 저자가 증답(贈答)경제라 한 ‘선물’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유희춘의 일기를 보면 10년 동안 선물을 받은 것이 2,788회, 준 것이 1,053회로 기록되어 있다. 거의 매일같이 선물을 주고받는다. 그만큼 화폐경제의 비중은 낮았는데 이는 재지양반층이 농촌거주자였다는 점과 맥이 통한다.

 

“재지양반층의 형성이 한국전통사회의 존재 방식을 특징지었다는 것은 같은 시기의 중국이나 일본과 비교해도 분명하다. 조선의 양반층이 지배 엘리트였다는 점에서는 중국 명·청조의 사대부층과 근세 일본의 무사층에 비견되지만, 중국의 사대부층은 명에서 청대에 걸쳐 점차 향거(농촌거주)에서 성거(도시거주)로 존재 형태가 변하고 있었다. 일본의 무사층도 마찬가지였는데 중세에는 농촌 거주지였던 무사들이 근세가 되자 성하정(城下町, 성 아래의 마을)에 집주하게 되었다. 이와 달리 조선의 경우 문자 그대로 농촌에 거주하는 재지양반층이 사회적으로 널리 있었는데, 이러한 사실이 조선 사회의 존재 방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여겨진다. 농촌 거주자로서 재지양반층의 존재는 영국의 젠트리 층과 비교될지도 모른다.” - 본문 36쪽

 

양반과 노비의 관계는 구체적으로 어떠했을까. 노비도 자기 토지를 소유하고 직접 경영을 할 수 있었다. 『쇄미록』에는 오희문이 자신의 전답의 찰수수싹이 드문드문 나는 것을 보며 노비 한복이 씨앗을 훔쳐 갔을 거라 짐작하고 ‘분통해서 참을 수가 없다’고 한탄하는 대목이 나온다. 또한 양반이 직접 상행위를 하는 일은 없었지만 노비를 통한 상행위를 하기도 하였는데 이때 노비가 자기 자금으로 독자적인 상행위를 하고, 그를 통해 재산을 모으는 경우도 있었다. 노비는 소유자의 재산으로 간주되어 매매가 되었고 따라서 가족이 해체되는 경우가 많았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저자는 양반과 노비의 관계를 일방적인 지배와 복종의 관계로 봐서는 안 된다고 한다. 양반에게 노비는 어떤 의미로는 방심해서는 안 될 존재였는데, 그런 관계의 근저에는 자신들의 지위를 높이려는 노비들의 집요한 노력이 있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4. 17세기 양반층의 경제력 저하, 상속제도의 변화와 문중의 결집

 

16세기를 중심으로 일제히 형성된 재지양반 가문은 주요한 계층으로서 사회적 결집을 시작했다. 이는 세거지인 동족집락을 이루는 과정이었다. 전국적으로 널리 전개된 재지양반층의 동족집락은 양반 지배체제의 거점 역할을 하면서 조선 사회 전체에 주자학적 질서를 수립하는 데 큰 힘을 발휘했다. 사회적 결집은 향안(鄕案) 조직을 통해 나타났으며 이들은 지방 행정에도 직·간접적으로 크게 관여했다. 한편 혼인과 학연을 통해서도 계층적인 결합을 강화했다. 권벌의 자손은 봉화 금씨, 퇴계의 집안인 진성 이씨, 김성일의 천전 김씨 등과 혼인관계를 이뤘으며, 권벌 가문의 학벌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준 사람이 퇴계 이황이었다. 주자학적 수양을 몸에 익힌 재지양반층이 결집한 장으로 서원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음은 물론이다.

안동 권씨 권벌 가문의 분재기를 통해 이 책에서 세밀하게 보여주는 16세기 남녀균분상속 원칙은 권벌 가문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이 일족에게 시집온 여성들도 그 형제들과 등등한 재산을 상속받았다. 여성이 결혼한 후에도 친정에 거주한 일반적 관행은 남성과 동등한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었던 여성의 강한 경제력에 뒷받침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17세기 중반부터 재지양반층의 경제력 저하가 나타난다. 이 책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유곡 권씨, 저곡 권씨 모두 17세기 전반까지는 자식 여러 명에게 재산을 나눠주면서도 재산 규모를 확대되었다. 그러나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로 들어오면 재산 규모가 정체되거나 줄어드는 경향으로 반전된다. 이 현상은 두 재지양반 가계에만 그치지 않고 전라도의 해남 윤씨나 부안 김씨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재지양반층의 경제력이 차츰 줄어듦에 따라 상속 형태도 크게 달라지는데 남녀균분상속→남자균분상속→장남우대상속으로 바뀐 것이다. 상속제도가 남녀균분에서 장남우대로 변화함에 따라 친족 제도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남계(男系)의 혈연 집단에 의해 구성된 동족집단의 결합강화가 그것이다. 이는 족보 형식의 변화와 문중 조직의 성립으로 드러난다. 15, 16세기의 족보에서는 남계와 여계를 함께 수록하던 것이 17세기 후반부터 남계자손 우선 편찬 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동족 결합의 강화라는 말로 집약되는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은 서로 깊이 관련되어 있었지만, 저자는 이 움직임을 근저에서 규정한 것은 재지양반 집단의 경제력 저하였다고 본다.

 

 

5. 한국 사회 유교적 전통은 중국을 존숭하는 민족성이 아닌 역사적 형성물

 

17세기 후반 이후 재지양반층의 경제력이 저하되면서 그들은 폐쇄적인 특권 집단으로서의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주자학 이데올로기를 전면에 내세우며 차츰 보수화의 길을 걷게 된다. 재지양반 집단의 지배체제에 제일 먼저 도전한 것은 향리나 서얼 등 사회적으로 중간층에 속하는 사람들이었으나, 19세기로 접어들면 더 하위 계층에서도 양반 지향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18세기 이후 먼저 향리층에서 시작해 더 하층으로 양반적인 가치관, 생활 이념이 차츰 확산되어갔다고 한다면 그것을 가능하게 한 조건은 무엇이었을까? 미야지마 교수는 일반 농민층의 소농 경영의 안정화와 이에 따르는 가(家)의 영속성의 강화에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해 일반 농민층까지도 그들 사이의 가(家) 관념·조상 관념의 일반화, 가족 구성에서 양반과의 동질성 획득과 같은 일련의 사태로 번진 것이다.

정리하면 재지양반층이 광범위하게 형성되면서 보급되기 시작한 가치관과 생활이념이 18~19세기에 걸쳐 농민층에게까지 보급되며 정착하게 된 것이다. 유교사회라고 일괄하여 불린 적이 있는 동아시아 중에서도 특히 한국에서 유교가 발생지인 중국 이상으로 깊숙이 침투하여 오늘날까지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이상과 같은 역사의 산물이었다. 그것은 중국을 존숭하는 민족성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특히 재지양반층이 농촌 지역에 널리 분포한 것이 사회 전체에 유교 이념을 침투하는 과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저자는 본다.

 

 

6. 근대 이후, 유교적 전통은 소멸이 아닌 강화의 방향으로

 

미야지마 교수가 이 책의 결론으로 삼고 있는 것은 전통과 근대의 관계다. 유교적 전통이 사회 전체에 스며든 것이 18세기 이후라고 한다면 이는 한국의 긴 역사에서 볼 때 그리 오래지 않은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19세기 후반 이후의 근대에서 이러한 유교적 전통이 소멸의 방향으로만 간 것이 아니라 강화된 측면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권벌의 12대 손인 권상익은 명성왕후가 시해되자 의병부대를 조직하였으며 3·1운동이 일어나자 곽종석, 김창숙과 함께 파리 장서의 작성에 참여하였다. 식민지 시기에도 안동 지역에서 유곡 권씨는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는 전국적으로 다른 유력한 재지양반층에도 공통적이었다. 1920년대가 되면 한국에도 사회주의 사상이 본격적으로 유입되는데 이 사상의 수용에 선구적인 역할을 한 지식인들도 대부분이 재지양반층 출신이었다.

저자는 일제 강점기의 토지조사사업에 대한 연구를 통해 근대적인 토지 소유권이 확정될 때 문중 재산의 구별이 더 명확해졌음을 한 예로 든다. 동족 결합의 요점인 문중 조직을 유지, 운영하려면 재정적 기반이 필요 불가결했는데 ‘토지조사사업’의 실시에 따라 법적으로 문중재산을 한층 더 명확하게 해두려는 노력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근대라는 시대가 전통적인 것을 해소해나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의 유동화가 격렬해지는 근대에 들어와 사회 전체의 양반 지향이 한층 더 가속화된 것을 잘 보여준다. 오늘날 자기가 속한 일족의 족보가 존재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시 말하자면 오늘날 한국인은 대부분 족보를 가지는 동족집단의 일원인데, 이것이야말로 양반 지향 사회 성립의 단적인 지표이다.

 

 

저자 소개

 

지은이 미야지마 히로시(宮嶋博史)

1948년 일본 오사카에서 출생하여 교토대학 문학부를 졸업했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문학연구과 석사 및 박사과정을 수료했다(동양사학 전공). 이후 도카이(東海)대학 문명학부 강사, 도쿄도립대학 인문학부 조교수, 도쿄대학 동양문화연구소 교수를 거쳐 2002년부터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교수로 재직 중이며, 2010년부터는 도쿄대학 명예교수도 맡고 있다.

그동안 한국의 조선시대와 근대시기의 경제사, 사회사, 사상사 분야를 집중적으로 연구했고 동시에 한국사의 특징을 동아시아적 시야에서 파악하고, 한국 학계와 외국 학계의 소통을 위해 고민해왔다. 주요 저서로 『미야지마 히로시, 나의 한국사 공부』(2013년, 너머북스) 『일본의 역사관을 비판한다』(2013년, 창비) 『朝鮮土地調査事業史の硏究』(1991년, 도쿄대학 동양문화연구소), 『明淸と李朝の時代』(공저, 1998년, 중앙공론사) 등이 있다.

 

 

옮긴이 노영구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한국문화연구소 연구원, 일본 방위(防衛)연구소 전사(戰史)연구센터 객원연구원을 역임하였으며, 지금은 국방대 군사전략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영조 대의 한양 도성 수비 정비』(2013년, 한국학중앙연구원), 『조선중기 무예서 연구』(공저, 2006, 서울대출판부)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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